저는 어려서 부터 일찍 잠이 드는 것이 습관이 되어 어른인 지금도 10시를 넘기기가 힘이듭니다. 반대로 남편은 청소년기부터 새벽에 자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일찍 잠드는 것을 힘들어 하죠. 여기에 이사 온 후로 울 우가에게 서재를 빼앗긴 남편, 집에 일찍 들어와도 있을 곳이 없다는 핑계로 귀가시간이 더 늦어 졌습니다. 도대체 그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뭔 일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사무실에 애인 감춰둔 것도 아니고, 텅빈 사무실에 혼자 무슨 일이 그리 재밌을까요?
오늘도 밤 10시가 넘어가지만 울 남편 오질 않습니다. 잠이 쏟아지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 보고 자야겠다는 일념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인 눈꺼풀이라구요. 이 말뜻을 매일 밤마다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냥 자면 되지, 뭘 그리 끝까지 남편 올 때까지 기다리느냐구요? 신혼도 아니구, 그렇다고 그 시간에 밥상 차려 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남편도 제게 그럽니다. 그냥 제발 좀 버티지 말고 자라구요. 그래도 안자고 저는 끝까지 버티다 남편을 보고서야 잡니다. 왜냐면 자기 전에 꼭 해야할 것이 하나 있거든요. ㅎㅎ 궁금하시죠?
혹 엉큼한 상상을 하시는 분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분은 제 대답을 듣고 "억 낚였다" 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제가 이렇게 밤 늦게까지 기어코 남편을 기다렸다가 꼭 하는 일은 바로 "수다 떨기"입니다. 남편이 들어오면 남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루에 경험했던 제 일상의 얘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그 때문에 울 남편 화장실 문도 못닫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쉴 새 없이 쏟아냅니다. 그러면 울 남편 그 얘기들을 아주 재밌게, 맞장구까지 쳐가며 들어준답니다. 한번씩 오버액션을 할 때도 있구요, 웃음보를 터뜨리며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말을 참 재밌게 잘하거나, 아님 제가 하는 얘기들이 참 재밌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저의 이런 수다가 일에 지친 남편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울 남편의 행복을 위해 그 늦은 밤, 쏟아지는 졸음을 참고 남편을 기다린 것이죠. 그런데요~ 음 .... 어느 날 울 남편이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나에게 고마워해야 돼."
"왜요? "
"당신이 하는 얘기를 재밌게 잘 들어주잖아. 남자들이 집에 들어와서 아내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줄 알아?"
헐~ 한번도 힘든 기색 없이, 제 얘기를 중간에 끊은 적도 없이, 항상 재밌게 제 얘기를 들어주던 남편이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니 꼭 뒤통수를 맞은 기분입니다. 난 자기 행복을 위해 쏟아지는 잠도 참는 희생도 마다 않고 이러는 것인데.. 솔직히 속상하더군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알았어..이제 그냥 기다리지 않고 잔다"
그렇게 마음 먹고, 이젠 남편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잠이 오면 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요... 잠이 안오네요. 입이 근질근질하고, 아 이 이야기는 울 남편 꼭 들어야 하는데...그런 생각에 눈만 말똥말똥.. 그래도 한 번 결심한 마음 여자가 칼을 뺐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잘라야죠. 초인종이 울려도 그냥 자는 척하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울 남편도 내 수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저 자는 것을 보면 분명 실망하고 날 깨울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버텨보았습니다. 그런데요, ㅜㅜ 울 남편 제가 잠든 것을 보고는 너무 고마워하는 것 있죠? 밉데요~ 그래서 자다 말고 일어나 다시 남편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미주알 고주알, 그렇게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또 잘 들어줍니다.
그런데 다른 집 얘기를 들어보니 울 신랑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더군요. 진짜 울 남편처럼 아내의 수다를 잘 들어주는 사람 별로 없데요. 하루 종일 직장일에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지쳤을 터라, 저는 재밌는 얘기로 남편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남편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좀 늦게서야 알았던 것이죠.
그런데, 최근에 제가 '새로본 가족과 한국사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 마지막 부분에 보면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두 가지의 노력을 하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해와 존중, 배려가 가족관계의 행복조건이라며, 그 가치들이 충족되도록 가족 모두가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냥 하루하루 너무나도 일상적인 경험이라도 그것을 서로 말하고 들음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려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대화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대화하는 방법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네요.
두번째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고,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태도도 행동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음가짐을 더욱 건전하고 건강하게 가질 때 가족이 봉착하고 있는 어려움이나 위기를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울 남편과 저는 아직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성격적으로, 또한 환경적으로 너무나 다른 남녀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한 얘기가 아닐까 생각도 들구요. 하지만 저녁 때마다 아내의 얘기를 기쁘게 들어주고, 대화를 한 까닭에 그래도 지금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여보 힘들지만 밤마다 내 얘기를 재밌게 들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도 내 얘기 이쁘게 들어줄꺼죠? ㅎㅎㅎ 고마워요.^^"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가실 때 추천과 댓글 꼭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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