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웬지 센치해지는 저녁입니다. ㅎ 저는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좀 강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조금만 헤어져도 막 보고싶고 걱정이 되구요. 남편은 좀 둘만의 시간을 갖자고 하는데, 저는 그거 정말 어렵더군요. 어떨 때는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편을 따라 나섰다가 괜히 싸우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혼한 지 15년이 되는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이 날은 둘이 좀 오붓하게 지내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하자고 약속해놓고 퇴근한 남편과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이 보고 싶은 거 있죠. 그냥 막 집에 돌아가고 싶구요,
"여보, 집에 가고 싶어요.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
이 말을 들은 남편 그 날 정말 화가 많이 났더군요.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가 그렇게 말하자 두 말하지 않고 차를 돌리면서 소릴 지릅니다.
"그래, 가자. 다시는 데이트 안한다."
이 뿐만 아니라 음식도 아이들 위주, 휴가도 아이들 위주,.... 거의 다 아이들이 먼저 였던 것 같습니다.
거제도에서 본 송아지 가족
아버님이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낮에는 제가 곁에서 아버님의 간병을 하고, 저녁에는 퇴근하는 작은 아가씨와 교대하였습니다. 사실 간병하는 것은 제겐 그리 힘든일이 아닌데, 정작 힘든 것은 아이들만 집에 두고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아이들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갑니다. 아이들이 저를 너무 기다릴 것만 같고, 왜 그리 보고싶은지.. 정말 병입니다. ㅎ
작은 아가씨(남편의 둘째 여동생)가 때로 늦을 때가 있더군요. 그럴 때면 옆에 있는 분에게 부탁을 하고는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아이들 걱정이 되어 가만히 있질 못하겠더군요. 그런 날이 몇 번 반복되니 마음이 편할 수 없죠.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제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우리 막내가 그런 제 마음을 몰라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말을 듣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사실 그리 심한 말도 아니고, 그저 어린 아이가 흔히 할 수 있는 한마디였는데, 저는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왜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가만히 제 자신을 관찰해 보니 한 가지 답이 나옵니다.
'아하~ 나는 울 아이들과 감정적으로 너무 밀착되어 있구나!'
저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아이들을 많이 의지하고 있으며, 아이들도 엄마를 너무 많이 의지하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이지요. 언젠가 방송했던 TV프로내용이 생각이 나더군요. 엄마가 암 말기였습니다. 한달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삶을 정리하려고 보니 그동안 얼마나 남편이나 아이들이 자신이 없으면 안되겠끔 그렇게 의지하도록 만들어 놓았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게 아이들을 나무라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집도 그랬던 거죠. 특히 울 아들 제가 없으면 혼자서 물도 먹지않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울 아이들도 저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참 힘들었습니다. 포기하는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 노력이 점점 결실을 맺어가는 것을 봅니다.
어느 정도로 변했냐 하면, 이번에 친정 아버지 산소를 가기 위해 1박을 한다고 하니, 아이들이 좋아서 팔딱 팔딱 뛰더군요. 이제 아이들이 다 큰 이유도 있겠지만, 엄마가 없어도 하루 정도는 너끈히 생활할 수 있게 된 거죠. 울 아들 계란 후라이드도 맛나게 할 수 있고, 간식도 혼자서 잘 챙겨 먹는답니다.
자신이 해도 될 것들은 하도록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섭섭하게 느껴지지 않네요. 이젠 아이들의 말 한마디가 저의 감정을 뒤흔릴 수 없도록 저도 많이 독립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울 둘째 딸의 삐닥한 말에도 그저 웃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부모의 역할이 뭘까? 성경에 보면 사람이 다 크면 부모를 떠나야 한다고 합니다. 즉 부모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우는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죠. 그 말씀의 뜻을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저의 역할은 우리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일을 선택하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건강하게 독립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아버지산소를 다녀오고 남편과 해남에서 1박을 하고 나니, 남편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아이들이 보고 싶어 어서 집에 가고 싶었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남편과의 이런 둘만의 시간이 부부에게 정말 중요한데 말입니다. 제가 그간 남편에게 넘 무심했던 것이지요. 해남에서 아침에 길을 나설 때 남편이 그러더군요.
"예전에 비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오늘 이렇게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책에 보니 아이들보다 남편이 먼저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그렇지 못한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이젠 저도 남편을 먼저 생각하는 아내로 변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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