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신 아버지 하지만 내겐 너무 좋은 아빠
제 아버지는 술을 참 좋아하셨고, 그 때문에 우리 집안은 참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저에게 있어 아빠는 따뜻한 존재였습니다. 항상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셨지만 제가 잠에서 깨어나면 아빠가 제 곁에 계셔 든든했습니다. 제 기억속에 남아 있는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웃고 있었고, 그만큼 저는 아빠를 좋아했습니다. 어떤 날은 아빠가 제게 화를 내면서 세게 밀쳐내도 저는 웃으며 아빠 품에 안겼다고 하더군요. 아빠도 그런 제가 이쁘고 사랑스웠는지 엄마에게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이것 좀 보게 ㅎㅎㅎㅎ."
하루는 낮잠을 자다 일어났습니다. 언제나처럼 잠에서 깨면 제 옆에 아빠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제가 잠들기 전까지도 아빠가 곁에 계셨거든요. 그런데 그 아빠가 계시지 않는 겁니다. 왜 그렇게 슬픈지.. 항상 내옆에 있을 것만 같은 아빠가 갑자기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과 허전함이 저를 엄습해왔고 저는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그 느낌과 슬픔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셨답니다. 제가 8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죽음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항상 내 곁에 계셨던 아빠가 이젠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빠가 없다는 것, 어두컴컴한 집에 들어설 때마다 저는 두려움을 느껴야 했고, 웬지모를 슬픔에 정말 오래도록 우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제 기억속에 아빠는 분명 저에게 있어 따뜻한 존재이고 소중한 분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리고 그런 아빠를 여읜 어린 저의 울음소리에 이웃사람들, 친척, 가족들도 제가 불쌍해서 더 우셨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아빠를 그리워 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남편이 목포에 있는 아빠 산소에 가자고 합니다. 남편 말로는 결혼하고 몇 번 가자고 했는데, 제가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사실 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결혼하고 17년만에 고향인 목포에 있는 아빠산소에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가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나는 한번도 아빠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제가 참 야속하고 인정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8살에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그 슬픔 그 충격이 너무 컸기에 다시는 되새기기 싫어서 , 그래서 내 기억의 깊숙히 숨겨진 아빠의 존재를 다시 꺼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지금도 아빠 생각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무엇가 내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있어보이는데, 그 슬픔을 다시 꺼내고 싶지가 않습니다.
가운데 고모의 도움으로 산소에 도착했습니다. 아빠의 무덤이 덩그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곳이 우리 문중의 선산이라, 고모부께서 선산관리를 참 잘해놓으셔서, 아주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햇볕이 잘드는 양지바른 곳에 묻혀 계시네요.
"아빠 저 왔어요. 넘 늦게 왔죠. 죄송해요."
"아버님, 저도 왔습니다. 제가 막내 사위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곤 한참을 그 앞에 서 있다 돌아섰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고모가 제게 묻습니다. "너는 아빠 산소에 오랫만에 왔는데, 왜 울지도 않니?"그 말씀에 그저 살짝 미소로 답했습니다. 말하면 정말 울 것 같아서요. 그렇게 아빠 산소를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왜 그토록 아빠산소에 가는 것이 힘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젠 제가 언니, 오빠들에게 얘기를 해서 함께 모여 아빠 산소에 자주 찾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우기듯 절 데리고 온 남편이 정말 고맙네요. 산소를 보고 오니 제 어릴적 내 곁에 누워계신 아빠의 느낌, 그 따뜻한 기운이 제 마음에 남아있는 듯합니다. ^^
↘ 엄하기만 했던 네 아이의 아빠 눈물로 후회한 사연
여러분 가정에 늘 평안기 기쁨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특히 건강을 잘 챙기세요.
그게 가족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요즘 더 크게 깨닫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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