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볼라벤이 오는 날, 우리집 분위기가 참 묘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사는 곳은 경상남도 양산시입니다. 이번 태풍 볼라벤, 초강력 태풍이라고 엄청 긴장했지만,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는 태풍이 지나갔는지 알송달송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거든요. 일단 한반도에 상륙한다는 월요일 밤, 우리는 아파트 창문에 테이핑 해놓고, 비상식량 준비해놓고, 나름 만전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울 큰 딸, 학교 마치자 학원 가지 않고 바로 집에 왔더군요.
그런데 둘째는 꼭 학원에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댄스학원에 다니는데, 곧 발표회가 있어 오늘 꼭 연습해야 한다네요. 울 남편 그런 딸에게 아주 무서운 얼굴 안된다며 억지로 주저앉혀 놓았습니다. 학원에는 전화로 연락하구요.
그리고 나머지 식구 모두 모여서..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전 식구가 한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TV 보며 이야기 꽃을 피웠네요. 그런데 11시가 넘어도 바람이 조금 심해지긴 했지만 그닥 태풍 같아 보이진 않구요. 울 둘째, 이럴 줄 알았다며 길길이 날 뛰지만 어떡하겠어요? 그만 자야지.
새벽이 되니 바람소리 거세지고, 조금 무섭긴 하던데, 이미 잠든지라 모르척 하고 그냥 계속 잤습니다. 우리 잠을 깨울만큼 볼라벤이 강력하진 않더군요. 그리고 다음 날..이거 알송달송한 날씨 때문에 울 아이들 모두 갈팡질팡입니다.
일단 어린이집 교사인 저는 어제 휴원공고를 받았기에 좀 느긋했죠.
아침엔 친절하게도 원장님께서 오늘 하루 휴원하고, 당직 교사 한 분이 어린이집을 지키기로 했다고 합니다. 태풍 덕분에 하루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더군요.
ㅎㅎ 그래서 하루종일 그간 밀린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울 아이들, 어정쩡한 날씨 때문에 학교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일단 아침을 먹기로 하고 준비하는데, 문자가 옵니다. 큰 애는 10시까지, 둘째는 10시 반까지, 셋째 중딩은 10시까지 등교하라고 하네요. 아~ 울 아이들.. 깊은 탄식 소리..아파트 바닥 꺼질듯한 한숨을 내뱉으며 학교 갈 준비를 하네요. 궁지랑 궁지랑.. 아마 볼라벤 우리나라를 지나가며 엄청 귀가 간지러웠을 것입니다.
울 남편, 하루 완전 등교차량 기사가 되어, 양산에서 부산까지 열심히 울 아이들을 날랐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힘쓴 덕에 한 녀석도 지각하지 않고 모두 무사히 학교에 갔네요.
울 막내는 아직 방학 중이시라 저랑 같이 하루종일 방에서 딩굴 딩굴..역시 초딩이 좋긴 좋습니다.
오늘 출근 잘하고, 울 아기들과 열심히 잘 놀고 있는데, 선생님들 커피타임하면서 모두 한 마디씩 합니다.
"아니, 태풍 와서 휴원하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냐구?
학교도 유치원도 다 휴원하는데, 왜 어린이집만 안된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우리 어린이집 아이들 중 맞벌이 하는 부부가 몇이나 돼?
이럴 때 자기 아이 집에서 잘 돌봐야지 엄마 집에서 놀면서 굳이 아기 어린이집에 맡기겠다는 이유가 뭐냐 말야?"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인터넷에서 어린이집 휴원하는 바람에 아기 맡길 곳이 없어 어렵다는 기사와 어린이집 교사가 그렇게 맡긴 아기 한 대 패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려져서 논란이 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지 못해 그냥 듣기만 했는데,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첫째, 우리나라 사람들의 안전불감증 정말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분명 기상청에서 초대형 태풍이 온다고 보도가 되었으면 이에 따른 안전조치를 해야 마땅한데, 우리네 직장 학교 학원 등은 별 상관없이 모두 출근하고 등교하라고 합니다. 울 둘째도 태풍이 온다는데 학원 꼭 가야한다고 하다 아빠랑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학교도 당일날 여건을 보며 등교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오락가락 하다, 뒤늦게 오라고 합니다. 아직은 사람의 목숨과 안전보다는 일과 학업이 더 중요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죠.
둘째, 아이들에 대한 안전의식 역시 심각합니다.
태풍이 오는데 부모가 출근해야 하고, 아이들은 집에 있어야 한다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몇 살까지는 이 태풍에 집을 지키고 있어도 된다는 것인가요? 현재 우리의 현실을 보면 유치원생들 이상은 태풍이 부는 날에도 씩씩하게 혼자서 집을 지킬 수 있고, 5세 이하의 유아들은 부모가 보살펴야 한다는 수준입니다.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태풍이 하나 더 온답니다. 오늘 밤이나 내일 쯤 한반도를 지나간다는데, 이 사회가 제발 좀 사람 목숨 소중한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안전에 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제대로된 대책을 세웠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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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제 글이 다음 메인에 떴군요. 제 블로그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지금 양산 날씨가 상당히 어렵네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조금 전까지는 소나기처럼 비도 엄청 내렸구요. 이제 아이들 퇴원시키는데 상당히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기를 데려갈 보호자들이 빨리 좀 와주시면 하는 맘으로 초조합니다. 기상이 더 악화되면 솔직히 다른 대책이 없습니다. 그저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도 많이 불안해하거든요. 그리고 어린이집 차로 아이들 데려다 줄 때도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교통 사고의 위험도 그렇고 비올 때 아이들 안전사고 문제도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 운행 끝나고 나면 드러눕는 분도 있습니다.
아래 댓글을 보니 다양한 의견이 있네요. 제가 이 글을 쓴 취지는 안전에 대한 의식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것입니다. 제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글을 좀 더 잘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넷 기사를 보니 작업하다 강풍으로 사고가 났다는 작업장 소식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기사가 보이질 않네요. 하여간 이렇게 태풍이 오는데도 무리하게 일을 해서 사고를 당해 때로 생명까지 잃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현실 이제 바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댓글에 보니 비가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불어도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인데, 이게 너무 무모한 일이 아닐까 이런 현실 이젠 좀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쓴 글입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굳이 이렇게 태풍이 불어 위험한데도 출근해야 한다면 그에 따른 최소한의 대책도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워킹맘들 이런 경우 어린 자녀 어디 안심하고 맡겨둘 수 없는 상황 너무 잘 알지 않습니까? 그 부담을 직원들에게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런 경우 직장내에 아이들을 맡겨둘 수 있는 보육시설을 해야 하는게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일만해라. 무조건 일만해라. 일하지 않으면 잘라버리겠다고 한다면 그 기업 이 사회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요즘 복지에 관한 정책 많이 이야기 하는데,워킹맘을 위한 보육시설, 상시든 임시든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갖추는 것을 법제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것이 실행되고 있구요. 말로만 2만불 소득, 선진국 따라야 한다고 말하지 말고 이런 것 좀 따라해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해하신 분들이 많으시네요. 어제 어린이집 휴원을 하긴 했습니다만 불가피하게 아기를 맡겨야 하는 가정을 위해 당직 근무를 했답니다. 어린이집 근처에 사시는 두 분 선생님께서 수고를 해주셨구요. 태풍에 피해 없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방문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by 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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