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둘째가 20개월이었을 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들을 임신한 후 너무 고생을 해서인지 출산 후에도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3주의 산후조리를 마쳤지만, 세 아이를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고맙게도 부산에서 휴가를 내고 올라와 제 산후조리를 도와준 작은 아가씨가 아이들을 부산으로 데리고 가서 2개월정도 키워 주겠다고 하더군요. 미혼이지만 10년이 넘게 어린이집 선생님의 경력을 갖고 있는 우리 아가씨는 아이들 키우는데는 베테랑입니다. 울 아이들도 고모를 잘 따르고, 시부모님들은 은근히 이 기회에 아이들 내려왔으면 하는 지라 안심하고 부산으로 보냈답니다. 그땐 저희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구요.
아이 둘을 부산 시가로 보내고, 매일 전화를 했습니다.
"고모, 아이들은 뭐해요? 잘 있어요?"
"아이고,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요. 언니도 안찾고 잘 노니까 걱정 하지 말고, 언니 몸이나 잘 회복하세요. "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공연 장면, 이 안에 울 둘째 히가 있습니다. 젤 이쁜 애 찾으면 됩니다.ㅎㅎ)
울 아가씨 참 착하지요. 덕분에 전 몸 조리를 잘했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서 예쁜 우리 두 딸이 돌아왔습니다.
"아가씨, 고마워요."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온 작은 아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너무 보고 싶은 우리 두 딸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았습니다.
"이게 누구야, 우리 큰 딸 잘 있었어? ㅎㅎ 울 희도 한 번 안아보자."
전 한 아름에 우리 두 딸을 안으며 아이들을 반겼습니다. 그런데요.. 둘째 희야는 제 품에 안기면서도 저를 외면하는 겁니다. 순간 제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올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그러는 아이를 제가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며 너무 보고 싶었구 사랑한다며 얼굴을 부비고 하니 그제서야 마음을 여네요.
전 직감적으로 아이가 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떨어뜨린 엄마가 너무 미웠던 것이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데, 그 엄마가 오지 않으니 보고 싶은 마음이 미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할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둘째 희는 밤마다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 때마다 울 아가씨는 어르고 달래고, 그래도 안되면 야단도 치고 때로는 매도 들었었다고 하더군요. 두 달 동안 전 아이에게도 고모에게도 너무나 못할 짓을 한 것이지요. 그런 줄 진작 알았더라면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데리고 있을 것을.. 살며시 눈물이 나네요.
고모가 부산에 돌아간 뒤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울 둘째는 2달 동안 받지 못한 엄마의 사랑을 보상받으려는 듯 끝없이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을 안지도 못하게 하고, 젖도 먹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동생대신 자기만 끊임없이 안고 사랑해주길 원했지요. 그리고 한 번 안아주면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격도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그전엔 제가 세수를 하면, 작은 걸음으로 알아서 수건도 갔다 주고...항상 웃으며, 이쁜짓만 골라 했는데, 이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칠게 행동을 합니다. 그렇게 달라진 둘째의 모습에 적잖게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모두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 제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아이가 원하는대로 다 들어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저는 죽을 힘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우리는 울 둘째가 3살이던 12월에 부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부산에 내려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새로운 일터에서 적응하느라 항상 11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왔기에 어디 제대로 하소연 할 데도 없었습니다.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대성통곡을 하며 기도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제가 다니는 교회의 유치원 원장님이 둘째도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하시네요. 언니는 네 살부터 선교원에 보냈었지만, 잠시라도 엄마 곁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둘째는 첫째와는 상황이 다르기에 고민을 하며 기도했습니다. 근대요~ 기도하면서 제 마음이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희가 원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억지로 나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원장님은 저를 만날 때마다 권하셨지만, 저는 그때 한 결심대로 아이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거의 밤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아이가 잠들고 나면 저는 혼자서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다음해 겨울, 봄이되고 새학기가 되기 전에 갑자기 울 둘째가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엄마, 이제 저도 언니따라 유치원에 갈래요."
지금요.. 저 울고 있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뒤 아이는 언니랑 유치원에도 잘 다니고, 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잘 자랐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한번도 저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자라고 있습니다. 1년 6개월의 힘겨운 수고를 아이도 몸과 마음으로 알아준 것 같습니다.
나중에 유치원원장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저아이가(울 둘째) 초등학교를 다녀도 엄마를 안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을 했는데, 신기하게 일찍 떨어졌네요."
제 주위에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한 분은 엄마와 떨어질 준비가 되지 않는 아이 2주간 떨어져 있었더니,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데도 학교공포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 주어야 하는데, 혼자 학교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힘들어해서 너무 고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 엄마도 이전에 아이와 떨어진 것을 많이 후회하더군요. 그분도 처음에는 억지로 떨어뜨릴려고 할수록 더 힘들었는데, 그 아이의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며, 마음을 안심시켜 주자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불안한 마음이 없어지고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채워져야 아이가 건강해 질 것이라는 것을 그분도 체험적으로 알고 있더군요.
울 둘째, 지금은 중학교 2학년입니다. 한창 사춘기라 한 번씩 톡톡 튀지만, 얼마나 이쁘다구요. ^^
요즘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 너무 감사드립니다.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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