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울 큰 딸 우가를 보면 참 신기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 올망똘망하던 시절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아주 성숙한 처녀티가 나거든요. 그래서 제가 한 번씩 아빠에게 과도한 애정표현은 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줍니다. ㅎㅎ 지금은 고등학생은 울 큰 딸의 아주 어렸을 적 공주병에 걸린 그 때의 이야기 들려드릴께요. 이 얘기 들으시며 재밌는 주말 계획하시길 바랍니다.
아마 4살 때일겁니다. 그 때 울 아이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선교원에 다녔답니다. 거기 선생님들하고 친하기에 정말 울 아이들 믿고 맡겨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울 아이 씩씩하게 아침에 선교원에 가고, 저녁이 되어 들어오면 가방을 내려놓자 마자 그 날 선교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쉴 새 없이 조잘거립니다. 그 땐 그 소리가 제겐 꾀꼬리 소리보다 더 예쁘고 즐겁게 들렸답니다. 그런데 그 조잘거림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ㅎㅎ
그런데 그 날은 자기 친구 이야기를 하는데, 자꾸 한 아이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자꾸 흉을 보네요.
"엄마, 우리 선교원에 수민이 있잖아요?"
"그래 그 예쁜 공주옷 입고 오는 아이? 그런데 왜?"
" 있잖아요? 수민이는 완전 공주병 이예요. 옷도 공주옷만 입고 오구요, 밥 먹을 땐 이렇게 먹어요 글쎄~"
그러면서 그 공주병 아이의 밥먹는 모습을 흉내내는데, 표정이 ~~~ 정말 보여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웃긴지 제가 보면서 막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우가가 하는 말이
"엄마도 보니 공주병 같죠? 그래서 제가 힘들어요."
그런데, 사실 우리 우가의 공주병도 만만치 않거든요. 제가 보기엔 한 수 위인 것 같은데..그래서 한 마디 했습니다.
"우가야, 그런데 우가도 공주병이잖아."
그러자, 우리 딸 정색을 하며 "엄마 그게 무슨 말이세요?" 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네요.
"엄마는? 난 공주병이 아니예요. 전 진짜 공주잖아요."
으악~~ 우리 딸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완전 빵 터졌습니다. 그 이야길 퇴근한 남편에게 말해주니 남편 배를 잡고 돌돌 구르네요. ㅎㅎ 우리 우가 어릴 적 사진을 보여드려야하는데.. 그 똘망똘망한 눈으로 엄지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난 공주야~" 하는 모습을 봤다면 정말 꽉 깨물어주고 싶을 겁니다. ㅎㅎ
우리 딸의 공주병 이야기 2탄이 이어집니다. 언제? 바로 지금요..ㅎㅎ 네 살이 되자 우리 딸 정말 공주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일단 비디오 가게를 점령하더군요. 제 손을 끌고 비디오 대여점에 가더니 거기서 백설공주를 빌렸습니다. 아마 금요일이었던 것 같네요. 토요일은 선교원에 가질 않거든요. 토요일, 아침 밥을 먹고 한 후 빌린 비디오를 그 때부터 보기 시작하더니, 보고 또 보고 마침내 저녁 6시까지 보더군요. 저도 도대체 저걸 얼마나 보나 싶어 내버려뒀거든요. 나중에 비디오 돌려줄 시간이 되어, 비디오테크에서 꺼내보니 테잎이 열을 받아서 뜨끈뜨끈해져 있는 겁니다.그래서 물었죠?
"우리 공주님, 이 백설공주 도대체 오늘 몇 번 보셨나요?"
"응, 8번요"
헉~~ 이 나이의 아이들은 반복해서 하는 활동을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세상에~ 하루종일 TV 앞에 앉아서 백설공주를 8번을 본겁니다. 근대 정말 8번 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시간 계산을 해봐도 그렇구요. 더 확싫한 것은 아예 대사를 다 외더군요. 마지막 볼 때 저도 옆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림이 나오자 마자 그 꼬맹이가 대사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마치 연기하듯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혼자 놀기의 진수를 봤습니다. 움직이는 그림을 보며 동작도 흉내내고, 대사도 그 어조 그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는데, 얼마나 즐겁게 구경하는지.. 이제 그만봐요 했더니 너무 아쉬워하네요. 그래도 테잎을 돌려줘야한다니까 굳이 같이 따라가겠다는 겁니다. 왜 그러는가 싶었더니 다시 그 테잎을 빌려달라네요. 더 봐야 한다구요. 그렇게 빌린 테잎 다음 날 또 열심히 보고 있네요. 저걸 그만 두게 해야할지 무지 고민되더군요. 그런데 우리 딸 그 날 저녁에 또 그걸 빌리는 겁니다. 저도 오기가 생기데요. 도대체 얼마큼 빌려서 보는가 보자. 얼마큼 봤겠습니까? 무려 일주일 내내 그것만 빌려보더군요. 그러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매일 보면서 백설공주 연습을 하니 말투도 백설공주, 걸음걸이도 백설공주, 밥먹는 모습도 백설공주..제가 보기에 정말 자신이 백설공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저녁에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자 우리 백설공주님 사과를 한 개 냉장고에서 꺼내더니 아빠에게 건넵니다.
"아빠, 이거 나한테 주면서 이쁜 공주님 맛있는 사과 하나 안사실려우? 그렇게 말하면서 주세요, 알았죠?"
영문도 모르는 남편, 하지만 뭔가 감을 잡았는지, 마귀 할멈 목소리를 내면서 딸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아이고 이쁜 공주님.. 정말 맛있는 사과 하나 있는데 사지 않으시려우?"
그러자 딸이 그 사과를 받아들며 말합니다.
"어머나, 너무 맛있겠다. 한 입 먹어봐도 돼요?"
그러면서 한 입 먹는 시늉을 하더니 손을 머리에 대고는 쓰러집니다.
" 아~ 어지러워"
그리고는 바닥에 누워 일어나질 않습니다. 어이 없어하는 남편, 우리 공주를 흔들어 깨우는데 우리 공주마마 정말 독사과를 먹은 것처럼 꼼짝도 않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 공주님이 독사과를 먹었네. 아이고 아이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편이 난쟁이 흉내를 내면서 온갖 쇼를 합니다. 정말 그 딸에 그 아버지네요. 그러자, 죽어 있는 공주님 아빠에게 죽은 채로 귀뜸을 해줍니다.
"왕자님이 오셔서 키스해주셔야 살아나지요, 빨리 왕자님 데려오세요."
우리 남편 그 목소리를 듣더니 다시 그럽니다.
"아이고 하나님, 우리 백성공주 살리려면 백마탄 왕자님이 와서 키스해주어야 한답니다. 백마탄 왕자님을 보내주세요."
그러더니 갑자기 옆방으로 들어가더니 마치 말을 타는 자세로 따가닥따가닥 거리면서 공주 곁으로 달려오네요.
"공주, 내가 왔어요, 어서 눈을 떠봐요."
그러면서 딸에게 뽀뽀해줍니다. 아빠의 뽀뽀에 살짝 눈을 뜬 공주님
"어머, 왕자님이시군요. 우리 결혼합시다."
그러면서 딴딴딴따.. 딴딴딴따 .. 그렇게 아빠 팔짱을 끼면서 결혼식장으로 들어섭니다. 딸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빠, 입이 찢어지네요. 그리 좋은가 나중에는 목말을 태우고는 집안을 돌아다닙니다.
재밌죠? 그런데요, 이 광경을 한 번이 아니라, 저는 일주일 내내 구경해야했답니다. ㅎㅎ 그런데도 우리 남편 싫다는 표정도 없이 매일 그렇게 딸하고 놀아주더군요.
며칠전 우가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막~ 웃네요. 그러면서 저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땝니다. 하지만 그 공주 버릇 어디 가겠어요? 요즘은 좀 더 세련된 공주가 되어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길 좋아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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