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뽀빠이는 힘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뽀빠이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죠. 바로 연예인 뽀빠이 이상용씨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뽀빠이 이상용씨가 사회하는 어린이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를 보면서 자랐답니다.
"모이자 노래하자"는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뽀빠이 이상용씨가 진행한 장수 프로그램이구요, 배우 장서희씨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뽀빠이 이상용씨의 추천으로 "모이자 노래하자"의 공동 MC로 발탁되었고, 이후 아역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네요. (배우 장서희씨가 저보다 한 살 어려요. ㅎㅎ)
그래서 그런지 저는 뽀빠이 이상용 하면 아직도 그 때의 이미지대로 젊은 아저씨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올해 71(1944년생)세로 송해 선생님 다음으로 연세가 많은 MC라는 말에 깜놀했습니다.
장서희와 모이자노래하자를 진행하고 있는 이상용씨
사람마다 살아오면서 인생의 심한 굴곡을 겪게 되고, 자기만의 인생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그 사람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없지 않습니까? 뽀빠이 이상용씨 역시 그런 심한 굴곡진 인생을 사셨더군요. 사실 저는 군인들을 찾아가는 인기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에서 이상용씨를 뵌 후 TV에 전혀 나오질 않기에 그냥 은퇴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작년인가 제가 우연히 한 연예방송에서 뽀빠이 이상용씨가 출연해서, 그렇게 많은 연세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 못지 않는 근육자랑을 하시는 걸 보고 엄청 반가웠습니다. 곁에 있는 남편에게 저 분 대단하지 않냐고 했더니 울 남편 툭 쏘듯이 한 마디 하네요.
"저 사람, 전과자잖아. 예전에 어린이심장병환자 돕는다는 단체 만들어서 그거 개인적으로 착복했다 감옥 간 걸로 아는데, 어떻게 저런 사람이 멀쩡히 다시 TV에 나오는지..에잉"
그러면서 엄청 언짢아 하네요. 남편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래서 한동안 TV에서 못 본 것이구나. 전 남편의 말을 듣고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우연히 이상용씨에 대한 글이 올라온 것이 있어 읽어보았더니, 정말 ... 이럴수가..이게 우리나라였다니.. 개탄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요량으로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제가 알지 못했던 이상용씨의 과거의 기사가 많이 있더군요. 특히 백일섭씨가 진행하는 "그 때 그 사람"에서 잘 나가던 유명 MC에서 한순간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사연을 소개하는 기사와 서화숙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에 그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 있어 제가 좀 정리를 해봤습니다.
우정의 무대를 진행하고 있는 이상용씨
이상용씨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갓난아기 때 생매장을 당할 뻔했고, 6살까지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며, 학창시절에는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키가 작아 놀림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명문대인 고려대를 나왔지만 변변한 직장에 취직도 하지 못해, 결혼 후에는 셋방을 전전하며 리어카 장사로 연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성실하고, 또 진취적인 성격이라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연예계로 진출했습니다. 변웅전씨가 진행했던 "유쾌한 청백전"의 출연을 시작으로, 어린이 프로인 "모이자 노래하자"에서 MC로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이후 착실히 연예계의 경력을 쌓아가다 1989년 ‘우정의 무대’를 진행하면서 국민적인 MC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심장병에 걸린 아이의 치료비를 대 준 것이 언론에 기사화된 것이 계기가 되어 "어린이 심장병 수술 돕기" 재단을 설립하여 34년간 그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이상용은 그 비용을 대기 위하여 밤무대, 행사 겹치기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런 그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은 어린이는 무려 567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1996년 ‘심장병 어린이 돕기’가 거짓이었다는 루머에 휩싸여 이상용은 사회에서 매장 당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의 입당 제의를 거절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대통령의 아들이 전방위로 그를 압박했고, 마침내 그는 심장병 재단의 기금을 유용한 죄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심장병 재단에서 거둬들일 기금으로 벤츠600타고, 40억짜리 집을 샀으며, 파주에 땅을 1만평을 샀다는 혐의를 받은 것입니다.
당시 이상용씨의 한국어린이심장재단의 비리를 다룬 추적60분
이 때문에 언론에서 이를 대서특필하였고, 그 일로 이상용씨는 완전 생매장되고 맙니다.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은 중지되거나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심장병재단을 탈탈 털었는데도 먼저 하나 나오질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면 심장재단의 기금은 대부분 이상용씨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운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훈장을 줘야 할 판인데 도리어 그를 범죄자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죠.
검찰조사 결과 이듬해 2월에 그는 무죄로 석방됩니다. 하지만 그가 검찰에 구속될 때는 벌떼 같이 달려들어 그를 생매장 시켰던 언론들, 그가 무죄로 석방되었을 때는 기사 한 줄 내보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울 남편처럼 뽀빠이 이상용씨가 어린이 심장재단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못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그런 누명을 벗고 고희가 지난 연세에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활동하셔서 참 감사합니다. 이분 정말 노력하는 분이더군요. 체력관리는 물론이고, 지금도 열공하시는 모습이 넘 보기 좋습니다. 저는 서화숙 기자와 인터뷰 마지막에 하신 이상용씨의 말에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지금껏 이상용씨가 맡은 프로그램은 대부분 10년이 넘게 진행되는 장수 프로그램인데, 그 비결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죽을만큼 열심히 해요. MC가 늦으면 가수 와봐도 헛 거 잖아요. 그리고 사회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잖아요. 전체를 알아야겠다. 그때부터 책을 본 거에요. 생각해봐요. 내가 텔레비전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잖아요. 키 작지요. 새까맣지요. 나이 많지요. 열심히 하고 오래오래 쓰이려면 책 밖에 없어요. 나는 컴퓨터를 못해요. 컴퓨터에 빠지면 집에 가자마자 마누라도 안 보고 거기에 앉는다 하더라고요. 휴대전화도 옛날 거 써요. 문자 할 줄도 몰라. 카드가 평생에 없어요. 주식 안 하지 펀드 안 하지. 대박 이런 것도 내 인생에는 없어요. 나는 공짜는 싫어요. 내 좌우명이 '가버린 어제를 후회하지 마라. 오지도 않은 내일을 무서워하지 마라. 오늘 최선을 다해라.' 천둥 번개 칠 때 무섭다고 집에 들어가 이불 덮고 누운 사람과 이러다 만다 하고 계속 걸어간 사람 중에 걸어간 사람만이 무지개를 보는 거잖아요."
제가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해주었더니 울 남편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뒤집니다. 그러더니 그 기사 아래 댓글을 달기 시작하더군요.
"뽀빠이 이상용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해 오해했습니다. 그간 저같은 사람 때문에 속상한 일 많이 겪었을텐데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저의 이 글로 혹 울 남편처럼 아직 이상용씨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진실을 알고 오해를 많이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게 방송활동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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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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