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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걸린 엄마 세 살 아이 같다가 엄마로 느껴지는 따스한 한 마디

치매 엄마

by 우리밀맘마 2014. 11. 2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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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걸린 엄마, 세 살 아이 같은 치매 걸린 엄마가 다시 내 엄마로 느껴지게 하는 따스한 한 마디



아빠는 제가 9살에 돌아가셨습니다.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살아 생전 울 엄마 속을 참 많이 썩힌 아빠, 그리고 술때문에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아빠, 그 아빠의 추도일 다가옵니다. 

그런데 좀 고민이 생겼습니다. 추도식에 엄마를 모시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엄마가 치매시거든요. 또 늦은 밤 시간이 되면 보통 힘들어 하셔서 바깥 나들이를 안하려고 하시는데.. 그래도 아빠 추도식에 엄마가 없으면 또 그렇잖아요? 큰오빠와 상의 끝에 남편과 저는 엄마를 모시고 오빠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치매 걸린 친정엄마를 다시 우리집에 모시고 살게 된 사연)

“엄마, 오늘 아빠 제사여서 큰오빠집에 가요. 작은오빠도 올 텐데. 울 엄마 너무 좋겠네.”

“누구 제사라고?”

“엄마 남편요. 그래서 큰오빠집에 가는거예요.”

그러자 울 엄마 아주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죽어서까지도 귀찮게 하네...”

엄마 말처럼 울 아빠 살아생전 엄마를 엄청 힘들게했습니다. 그래도 두 분 연애결혼해서 우리들을 낳고 살았는데, 엄마가 그리 말하는 이유를 알면서도 좀 기분이 그렇네요. 
 
“뭘요. 아빠 덕분에 엄마가 사랑하는 두 아들에 세 딸 낳고 살았는데 고맙죠.”

큰 오빠 집에 도착하니 음식 준비로 부산합니다. 저도 좀 거들다 보니 식구들이 다 모였네요. 언니들은 모두 멀리 살고 있어 이번 추도예배 때는 오질 못했습니다. 큰오빠가족, 남편, 저 엄마, 그리고 작은오빠까지 모여 추도예배를 드렸습니다.


엄마울 엄마..작년 여름 작천정계곡에 서

 

저와 큰 오빠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울 작은 오빠는 믿지 않거든요. 그리고 큰 오빠도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되지 않아, 우리집 추도예배는 제사와 짬뽕입니다. 일단 예전처럼 상은 차리되 상당히 간소하게 합니다. 아빠 사진을 올려놓고, 형제가 술 한잔 올려 드립니다. 작은 오빠는 절을 하구요. 그리고 나면 다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추도예배를 마친 후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합니다. 다과를 함께 하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 오순도순 형제 간에 이야기하는 우리들 틈에 오랜만에 엄마도 간간히 이야기를 하시네요.

죽어서도 귀찮게 한다며 툴툴대며 따라온 엄마, 치매에 걸려 생각도 많이 혼미해서 남과 이야길 잘 안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어째 기분이 아주 좋으신 모양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 가족 모두 웃음보가 터집니다. 우리 엄마가 이리 재밌는 분인줄 몰랐네요.

작은 오빠가 투잡을 합니다. 야간으로 대리운전을 한다고 하네요. 대리운전 한다는 이야길 들을 때 얼마나 어려우면 대리운전도 하나 싶은 안쓰러웠는데, 울 오빠 대리운전 노하우를 슬쩍 우리에게 흘리면서 생각보다 벌이가 괜찮다고 합니다. 울 오빠의 수입을 듣는 순간 울 남편이 급 호감을 나타내며 이리 말합니다.  

“그래요? 그렇게 벌어요? 그럼 나도 대리운전하러 가야겠네.”

그런데 남편의 이 말을 듣던 울 엄마, 다급하게 한마디합니다.

“조금만 먹고 살아.”

엄마의 말에
제가 빵 터졌습니다. 하지만 울 오빠들은 엄마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는 “뭐라고 했소?”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대답을 했지요.

“엄마, 우리 남편에게 대리운전까지 해서 힘들게 살지 말고, 조금만 먹고 아껴 살아라는 뜻이지요.”

제 말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시네요.

“응.”

엄마의 대답에 온 가족이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섭섭해도 뭐가 섭섭하다고 말을 잘 하지 않는 엄마입니다. 그런데 치매까지 걸려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엄마입니다. 그러다 돌발행동을 해서 우릴 무척 난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떨 땐 울 엄마가 제가 어린이집에서 돌보는 세살박이 아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엄마랑 살면서 제일 답답하고 힘든게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지 않는 겁니다. 원래 성격이 그러시기도 하구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거의 대화가 없어 항상 우리 집에서 외톨이 같아 보여 안타깝구요.

울 엄마도 자기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엄마의 말문이 터졌네요. 오늘 이렇게 우리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울 엄마를 보니, 제가 늘 걱정하던 그 세살박이 모습은 사라지고 정말 우리 엄마 같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니 그저 좋네요.

울 엄마 계속 이렇게 우리랑 속내를 털어놓고, 오손도손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올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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