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볼라벤, 우리나라를 거쳐갔던 태풍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큰 위력을 지닌 태풍이라 하여 우리 가족 모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대형 유리에 울 남편 땀을 뻘뻘 흘리며 테이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예전에 태풍 매미가 올 때 울 남편 겁도 없이 광안리 해변가에 있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죽을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 집이 지금 민락동 수변공원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 새로 지어진 아파트라 친구가 자랑하며 집들이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이 하필이면 태풍이 오는 날, 그것도 엄청난 "매미"라는 이름의 태풍이 오고 있었는데, 울 남편과 그 친구들 겁도 없이 친구 집들이를 갔답니다.
그런데 이 집들이는 시작부터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친구의 초청에 그 집을 찾아갔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집안과 아파트의 기압 차이가 나서 그런지 안에서도 밖에서도 아무리 문고리를 잡아 당겨도 문이 열리지 않더랍니다. 그래도 장정들이 대여섯 가다보니 억지로 힘으로 열어 어찌어찌하여 집 안에 들어가긴 했는데, 집에 들어가니 정말 입이 쩍 벌어지더라네요. 집안 풍경도 그렇지만 해운대와 광안리가 함께 보이는 그 풍경, 거기다 태풍까지 오니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정말 이런 풍경이 다시 없더랍니다. 그 때 카메라를 갖고 가지 않아 그 멋진 풍경을 제대로 담질 못했다고 지금도 아쉬워하네요.
태풍 부는 날 양산천의 모습
그렇게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데, 여러분 태풍 매미가 어땠는지 아시죠? 점점 바람 소리는 거세지고, 비도 억수같이 내리는데, 마시고 굽고 노래하며 놀다가 점점 분위기가 무서워지더랍니다. 어지간히 먹었으니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는 분위기는 생겼는데, 과연 집에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TV에서는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 장면을 계속 생중계 해주고 있는데, 그제서야 지금 지나는 태풍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실감이 나기 시작한거죠. 특히 항구에 웅장한 자태로 서있던 일명 골리앗이라고 하는 대형 크레인이 태풍으로 주저앉은 모습은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구요. 등에서 식은 땀이 나더랍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아파트, 바깥 경관을 잘 보게 하기 위해서인지, 전면을 대형 유리로 한 건물이었는데, 정말로 바람에 눌려 그 유리가 쑤욱 휘어져 들어오더랍니다. 그리고는 자칫하면 터질 것 같은.. 풍선 많이 불면 터지는 것 같은 그런 모습..엄청난 바람과 바람 소리, 비내리는 소리, 그 속에 영화에서 효과음으로 들리는 그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순간 모두 입이 쩍 벌어져 아무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후 와장창 하며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엄청난 바람 소리에 벌벌 떨며, 모두들 그 방에서 나갈 엄두도 못내고 그렇게 함께 밤을 지샜다고 합니다.
태풍이 부는 날의 양산천 모습
저도 집에서 엄청 걱정을 했었죠. 집들이 간다고 한 사람 지금 상황이 그렇다고 하니.. 에휴~ 당시 저희 집은 빌딩 숲에 숨겨진 작은 양옥집이라 그런 간담 서늘한 경험은 할 수 없었죠. 하지만 그 태풍 불어오는 밤, 남편 없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보낼려니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울 남편도 그게 걱정이 되어 계속 전화하구요. 그렇게 긴 밤을 보내고 우린 아침에 다시 만났는데, 남편 보자마자 눈물이 터지네요. 그런데 이게 벌써 10년이 지난 이야깁니다. 엊그제 같은데..
그 후로 우리 남편 태풍 온다는 소식만 들으면 일단 큰 창문에 테이핑부터 합니다. 그나저나 볼라벤, 예상했던 것보다 큰 피해 입지 않고 지나갔다니 다행입니다. 태풍으로 피해 입으신 분들에겐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또 하나가 다시 올라오고 있다는데..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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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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