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어린이날이었습니다. 불과 작년만해도 5월만 되면 우리 부부 일단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ㅎㅎ 챙겨야 할 것은 많고, 주머니는 얇고,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좀 저렴한 비용으로 이 모든 것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머리를 맞대고 고심해야 했습니다. (☞ 어린이날 가족 나들이 12만원으로 해결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일단 세월호 사건도 있고 해서인지 황금연휴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좀 썰렁한 분위기입니다. 아빠가 주일 저녁에 아이들을 불러놓고, 내일 어린이 날인데 우리 뭐할까? 라며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씩 대답합니다.
재수생인 울 첫째, 이 날은 오랜만에 친구 만나러 가야 한답니다.
고삼인 둘째, 오랜만의 황금 연휴 친구 만나서 놀다 학원가야 한답니다.
고일인 셋째, 학교 가서 공부해야 한답니다.
중2인 막내, 그래도 가장 어린이에 접근해 있는 우리 막내라 기대했건만 이 녀석도 친구들하고 놀기로 했답니다.
어린이날, 황금 연휴에 울 부부 졸지에 아이들에게 왕따 당했습니다. 울 남편 아이들의 말을 듣고는 얼굴이 확 굳어집니다. 쓸쓸함에 대하여.. ㅋㅋ 갑자기 최백호의 노랫말이 생각이 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저를 보면서 이럽니다.
"우린 뭐하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마침내 어린이날 아침 밝아왔습니다. 울 아이들 연휴라고 마음껏 정말 마음껏 자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나씩 치장을 하기 시작하더니 집을 빠져 나갑니다. 저도 모처럼의 연휴라 실컷 자고 일어났더니 집이 아주 썰렁합니다. ㅋㅋ 얼마나 피곤했었는지 저도 아이들이 집을 나갔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꿀잠을 잤네요. 일어나서 방청소 좀 하고 보니 벌써 11시, 남편은 사무실에 가고 없습니다.
남편에게 커피나 한잔 얻어 먹을까 해서 사무실로 갔더니, 이 양반 컴퓨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 열심히 보네요. ㅎㅎ 혼자 영화보고 있습니다. 저도 그 곁에서 같이 쪼그리고 앉아 함께 봤죠. 그런데 영화가 영 재미가 없네요. 제가 재미 없다니까 울 남편, 그럼 우리 둘이 밥 먹고 영화나 하나 보고 올까 그러네요. 자기가 쏜다구요. ㅎㅎ 마다할 이유가 없죠. 그렇게 울 부부 외출을 준비했습니다.
"삘리리리 따르릉.."
갑자기 남편 전화 벨소리가 울립니다. 울 막내입니다.
"아빠, 거기 엄마 있지? 배고파..밥 줘"
울 남편 막내 전화를 받자 얼굴이 활짝 펴지네요. 그리고 밥달라는 소리에 너 오늘 친구랑 놀러간다며? 그러자 울 막내 그 친구가 부도냈다며 오늘은 집안에서 딩굴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울 남편 갑자기 막내에게 이럽니다.
"이삐야, 그럼 아빠가 점심 사줄께, 뭐 먹고 싶어? 뭐든 말해봐!"
어쭈 이 양반, 방금 나랑 데이트 하자고 해놓고는 막내에게 밥먹자고 하네요. 그러자 울 막내 파스타가 먹고 싶답니다. 갑자기 울 남편 신이 났습니다. 아니 흥분했다고나 할까요? 어서 챙겨입고 나오라고, 아빠가 파스타 맛있게 하는 집 알고 있다고 막내를 재촉합니다. 이미 남편의 시선에 전 없습니다. 이런 ㅜㅜ 전화를 끊고 울 남편 룰루랄라..저렇게 좋을까요? 저보고 파스타 먹자고 합니다. 헐 전 별론데.. 조금 있으니 또 남편의 전화가 울립니다. 아들입니다.
"아빠, 방금 제가 듣기로 파스타 먹으러 간다는 이상한 정보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너도 갈래?"
"흠 ~ 뭐 저도 오후 세 시까지 학교 가면 되니 아빠가 그리 원하시면 따라야지요."
울 남편 아들의 말에 더욱 신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챙겨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아들도 간대~' 아주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누가 보면 아들 딸 하나씩 네 식구가 단란하게 외식을 즐긴다고 하겠죠. 저도 좋네요. ㅎㅎ 원래 전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 울 남편도 저랑 단둘이 가는 것보다 아이들이랑 같이 가는게 좋은가 봅니다.
전 이렇게 어린이날, 남편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ㅎㅎ
식사를 하는데도 울 남편 아이들에게 먹을 거 덜어주고 서비스가 장난 아닙니다. 그런 모습 본 울 아들, 아빠가 좀 흥분했다며 한 마디씩 하네요. 울 남편 그런 말에도 아랑곳 않고 많이 먹으라 하고, 더 먹고 싶은 것 없냐며 연신 싱글벙글입니다.
에구 이 양반아 아이들 어릴 때 좀 더 잘하지.. 이제 아이들 다 커가니 아이들하고 함께 있는게 좋고, 또 아이들이 내 품에서 벗어나는게 많이 아쉬운가 보네요. 그건 뭐 저도 그렇구요.
이렇게 어린이가 없는 우리집의 어린이날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아이가 넷이나 있는데, 어찌 어린이가 하나도 없는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아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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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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