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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결혼 1년만에 과부될 뻔한 사연

알콩달콩우리가족

by 우리밀맘마 2011. 10. 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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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1994년 10월21일 아침 7시 38분, 결혼 1년만에 과부될 뻔 한 사연





우리가 살아온 세월들을 되집어 보면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다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잊혀진게 아니라 잊으려고 몸부림치다 기억의 저편으로 넘겨 두었기도 하고, 다시 기억을 되살리기 싫어 잊어진 듯 살아온 세월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기억들은 조그만 단초만 생겨도 뇌리에 생생히 드러나 마치 그 때의 일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섬짓함을 느끼게 합니다. 제겐 그 중 하나가 성수대교 붕괴사건입니다.


사실 저는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진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에서 성수대교 붕괴에 대한 글들이 많이 올라오길래 아~ 그 때구나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38분이었습니다. 이 시간 특히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이었기에 꽃다운 우리 아이들이 이슬같이 사라진 정말 가슴 아픈 날이었습니다. 게다가 수능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장례식 또한 미묘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 친구의 빈자리에 꽃을 가져다 두었다는 이야기, 오시지 않는 선생님을 추모하는 아이들의 마음..정말 가슴아픈 사연들로 인해 온 나라가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었죠.

그런데, 그 날 저도 그런 슬픔에 빠진 유족이 될 뻔 했답니다. 제가 1993년에 결혼했기에 결혼 1년만에 남편과 사별할 뻔 한 것이죠.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립니다.

검색을 해보니 그 날이 금요일이었네요. 남편은 서울에 있는 모 대학교 석사학위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신혼집 옆에는 남편 친구 부부가 살았는데,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침에 친구와 함께 학교에 갔습니다. 보통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친구가 중고승용차를 한대 구입하면서 바쁠 때는 승용차로 학교에 갔답니다.  

저희 집은 부천, 학교는 서울 강북쪽에 있었구요. 솔직히 전 결혼 때문에 남편을 따라 이곳으로 왔지만 서울 지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7년을 살았지만 혼자 지하철도 못탄답니다. 그저 남편이 거기다 하면 그런 줄 알고, 가자 하면 따라다녔거든요. 그 땐 서울지리엔 완전 젬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차를 타고 가면 성수대교를 건너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성수대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구요. 그런데 아침부터 TV만 켜면 성수대교 이야기가 나오는겁니다. 아 다리가 무너졌구나.. 이럴수가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며, 어떻게 해 어떻게 해~~ 그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마치 두부 잘리듯 무너진 성수대교

 

그리고 저녁 수업을 마친 남편이 들어오네요. 전 남편을 맞이하자마자


"여보, 성수대교가 무너졌데요. 이걸 어째~"

그러자 울 남편 뭔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하는 눈빛으로 말합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릴하는거야? 내가 아침에 성수대교 지나서 학교로 갔는데, 멀쩡한 다리를 두고 왜 그런 소릴하누?"

허걱~~ 그 말을 듣는 순간 섬찟하더군요. 남편은 다리를 건넌 후 저녁까지 수업을 받았기에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TV를 켰더니 마침 뉴스에서 성수대교 무너진 소식을 다시 전하더군요. 그리고 성수대교 무너진 시각을 확인하던 울 남편, 잠시 멍해지더군요.

"내가 학교에 도착한 시간이 8시 정도이고, 성수대교에서 학교까지 한 20분 걸리니까 대충 어림잡아 내가 성수대교를 지나간 시간이 7시 40분 정도인데, 내가 지나간 뒤 바로 무너졌다는 이야기구나, 후~~~" 

남편이 갑자기 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충격이 무척 큰 모양이었네요.  그리고는 전화를 겁니다. 아마 아침에 학교 같이 간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모양입니다.

"아~ 형이우~ 뉴스 봤어요? 오늘 성수대교 무너진 거?'

"응..아는구나, 그런데 형 그 무너진 시간이 언젠지 아우? ... 그렇지? 정말 소름끼치네. 휴~ "

둘은 형동생 하면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인데 그분도 방금 사실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둘다 전화를 하긴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네요.

"그래요 형, 우리 잘 삽시다. 정말 잘 살아야합니다... 그래요. 내일 빈소라도 함께 다녀옵시다."

그날 저녁 우린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그저 잠자기 전에 우리 부부 손을 잡고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저 저희 느낌에 주님도 그런 참상에 할 말을 잃은 듯 ..그랬습니다. 그리고 17년이 지났네요. 그분들 뵙기에 부끄럽지 않을만큼 제대로 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렇게 세월이 지났구나 싶은 마음에 미안함이 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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