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어린이집에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선생님들과 아이들이랑 넘 빨리 친해지네요. 요즘은 어린이집 출근 시간이 기다려진답니다. 어서 가서 우리 이쁜 것들과 잼 있게 놀아야지. 그런 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나 봐요. 아침에 절 출근시켜주는 남편, 그런 절 보고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놀러 가는 것 같다고 핀잔을 줍니다. 그래도 여전히 절 내려줄 때는 파이팅을 외치죠. ㅎㅎ
우리 원에 보면 특히 네 살 아이들 중 악동들이 많습니다. 난적이죠. 이미 작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녔기 때문에 여기가 익숙해져서 완전 제집처럼 살아갑니다. 그리고 텃새를 부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선생님 말 안듣고, 또 선생님들을 자기 의도대로 조종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여간내기들이 아니죠. 살짝 방심하면 당하고 맙니다.
우리 원에 배테랑 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열심인데, 배테랑이라 그런지 아이들 이 선생님 말씀에는 고분고분 말을 잘듣네요. 그 악동들도 이 선생님 옆에는 잘 가려고 하질 않습니다. 선생님이 오면 착한 척하다가 나가시면 지들 마음대로 하죠. ㅎㅎ
그런데 오늘 한 악동이 제 반으로 쫓겨 왔습니다. 말 안듣는 녀석들 유배지가 우리반입니다. ㅎㅎ 대부분 우리 반에 오면 그래도 제 말을 잘 듣고 잘 따라주는데 오늘 우리 반에 온 시연이, 특기가 다른 아이들 갖고 있는 것 빼앗기입니다. 평화롭게 잘 놀던 우리 아이들, 그 평화가 이 악당으로 인해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우리 반이 아수라장이 되고 말더군요. 놀잇감들이 여기저기 방에 흩어지고, 아이들은 제 것을 빼앗겼다고 울고, 그 속에서 우리 시연이 늘름하게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제가 그러면 안된다고 타일렀지만 울 시연이 듣는 둥 마는 둥.. 슬슬 마음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 때,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울 배테랑 선생님. 그 선생님이 우리 반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 악당 시연이 꼼짝을 못하네요. 드뎌 찾아온 평화, 울 시연이도 얌전하게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합니다. 신기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살짝 그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비결이 뭐예요?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자 울 배테랑 선생님 슬쩍 미소를 머금더니 제게 그 비책을 가르쳐줍니다.
"선생님 아이들을 혼낼 때에는 아이에게 엄한 표정을 하고 내 눈을 보고 얘기해, 그렇게 말하면서 타이르면 아이들이 말을 잘 들어요."
아하 그런 비법이.. 아주 유용한 걸 하나 배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헤어지고 울 반에 들어섰는데, ㅎㅎ 역시 울 시연이 그 새를 못참고 아이들을 울려놓고 있습니다. 드뎌 제가 배운 것을 써먹을 기회가 왔습니다. 선생님이 시킨대로 제가 시연이의 손을 잡고 엄한 표정으로 말했죠.
"시연아 선생님 눈을 보면서 얘기해. 만일 시연이가 가지고 놀던 것을 다른 친구가 빼앗으면 어떻겠어?"
울 시연이 좀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겠죠.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고분해지네요. 앗싸~ 통했다.. ㅎㅎ 그래서 그 이야기를 점심 때 다른 선생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특히 4세반 선생님이 열심히 듣더군요. 그리고 식사 후 좀 지나서인가 4세반 선생님이 울 반으로 오시더니 갑자기 바닥에 누워 돌돌 구르는 것이 아닙니까? 점심을 잘 못 드셨나? 제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 아까 내 눈을 보고 예기해, 라는 비법 있잖아요? 제가 그걸 우리 반 악동들에게 써먹었거든요. 특히 그 예쁘장한 미연이와 한수, 오늘 따라 더 심하게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녀석들을 불러서 손을 잡고, 선생님 눈을 보면서 얘기해 .. 그랬거든요.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울 선생님 웃음을 못참고 또 다시 까르르 거리면서 제게 말하는 겁니다.
"그랬더니요, 미연이는 갑자기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한수는 고개를 돌려버리는 거 있죠?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화도 못내고 그렇다고 웃지도 못하고, 그래서 이곳으로 피신 온 거예요. ㅎㅎㅎㅎ'
ㅋ 울 배테랑 선생님의 비법이 통하지 않는 강적들도 있나 봅니다. 가만, 이 아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있네요. 울 배테랑 선생님이 작년에 3세 반을 맡았으니까 이 악동들이 바로 배테랑 선생님의 제자들이었던 거죠. 작년에 몇 차례 격어보니, 나름대로 자기 방어책이 생긴 겁니다. 아~ 선생님 눈을 보면 안되는구나.. 하고 말이죠.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