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방선거날이 다가오니 선거운동하는 모양이 부쩍 눈에 띄네요. 선거 때가 되면 옛날 생각이 나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옵니다. 저는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요즘 역시 정당들이 너무 지방색을 띠고 있잖아요. 민주당은 호남당, 선진당은 충청도당, 한나라당은 영남당 그리고 경기도와 서울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죠. 이젠 좀 그런 형편이 사라졌나 했더니 뭐 별로 달라진 게 없어보이네요. 남편은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싫어한답니다. 자기 대통령 하려고 예전 민주당과 민정당이 통합하여 정당의 지방색이 더욱 공고해졌다고요. 그러면서 괜시리 혈압올립니다.
흠.. 우리 부부는 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제 고향이 목포이고, 남편은 부산이거든요. 시부모님은 경북이 고향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릴적부터 부산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친정식구와 만나면 자연스레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옵니다. 물론 남편과 같이 있을 때는 부산 사투리로 말하구요. 상황에 따라 어찌 이렇게 자연스럽게 변하는지 제 자신도 놀랄 정도입니다. ㅎㅎ
서울에서 살 때입니다. 한 날 남편이 쉬는 날, 아침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전화를 받자 저는 이내 전라도 모드로 돌입했습니다. 입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죠.
"아따 엄마 왜그란다요? 그라먼 쓰겠소? 엄마가 좀 참으쇼이..아따 그라먼 안된당께라..."
그렇게 한참을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제 뒤통수가 근질거리더군요. 그래서 슬며서 고갤 돌려보니 남편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멍하니 절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구미호에 홀린 눈빛을 하구서요. 조금 후 엄마와 통화를 마치자 남편이 제게 넋나간 표정으로 묻더군요.
"저기 혹시 제 마누라 맞나요? 집을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지.."
그제서야 울 남편 제가 전라도 출신이란게 실감이 났나봅니다. 그러면서 아주 신기해하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신할 수 있냐구요. ㅎㅎ
서울 살 때입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함께 출마한 적이 있었잖습니까? 그 때 전 누굴 찍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울 남편 좀 퉁명스런 투로 말하더군요.
"내가 말하는 사람 그 사람 찍으라고 하면 찍을꺼가?"
"그거야 모르지.. 뭐 내맘이지.."
"그럼 뭐할라꼬 묻노? 그냥 지 맘에 드는 사람 골라 찍으먼 되지"
"그래도 부부가 그런거 서로 물어보기도 하고 그래야지.. 누구찍을껀데?"
"안갈카 준다, 니 맘대로 찍어라, 나도 내 맘대로 찍을끼다"
그렇게 선거일 아침에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남편이 받더군요.
"어~ 자넨가? "
"어이구 어머님 아침 일찍 어쩐 일이십니까?"
"오늘 자네 누굴 찍을껀가?"
"네?"
"내 두 말 않네. 누구 찍어야 하는지 잘 알제? 내 그럼 믿고 끊네"
"예? 뚜두뚜뚜 ... "
울 남편 장모님의 기습 전화에 넋이 나갔습니다. ㅎㅎ 그런데 또 전화가 오더군요.
"나다, 엄마다.."
"네 어머니, 어머니는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엄마가 자식한테 전화도 못하나?"
"아니 그게 아니구요, 무슨 일이세요?"
"오늘 선거 아이가? 니 누구 찍을끼고? 설마 니 마누라 따라갈 껀 아니제? 똑바로 찍어라. 그리고 며늘아기 바꿔바라"
남편이 건네주는 수화기를 제가 받았습니다. 대뜸 울 어머님 이러시네요.
"아가야? 니 누구찍을껀지 잘알제? 잘 찍어라, 담에 보자. 뚜뚜뚜뚜.."
ㅎㅎ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나 두 분 다 어디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분들 아니거든요. 도리어 그런 쪽 하고 거리가 아주 먼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그 날만큼은 이런 전화를 하시네요. 어른들께는 그 당시가 지역간의 자존심 경쟁으로 여겼나 싶기도 하구요. 하여간 그렇게 하여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누구 찍었냐구요? ㅎㅎ 제 소신껏 찍었습니다. 그리고 비밀입니다. ㅎㅎ 이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되었을 때는 그 전날 남편이 시어른들과 친정식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더군요. 이젠 자기가 갚아야 할 때라나요?
이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누굴 찍을까? 이번에는 남편과 상의해서 찍어볼까 합니다. 왜냐면 제가 후보들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거든요. 남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서 결정하려구요, 아무래도 저보다는 그런 쪽으로 정보에 밝거든요.
요즘 들어 한 사람의 지도자가 저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잘 알아보고 잘 찍어야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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