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버이날이면서도 놀토입니다. 우리 가족 모두 최대한 딩굴 수 있는데까지 딩굴어 보기로 하고 그냥 누워서 버텼습니다. ㅎㅎ 그런데 뱃속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는 참기 어려워지더군요. 부시시 일어나려고 하니, 큰 딸이 오늘은 자기가 아침밥을 하겠답니다. 일명 "우가의 토스트"를 보여주겠다네요. 설겆이는 아들이 하기로 하고, 막내는 작고 앙증맞은 카네이션과 감사 카드를 줍니다. 제꺼와 남편꺼 ~ 내용이 뭘까 궁금해서 보니, 역시 우리 딸 참 재밌게 썼네요. 그런데 아빠에게 보낸 카드 내용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제가 보여달라고 하지 않아도 남편 입이 근질거리는지 보여주네요. ㅎㅎ 무슨 내용이게요?
아빠, 절 낳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즘 아빠 회사일로 많이 바쁘시죠? 너무 힘드신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도 늦게 들어오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시니 좀 미안하시죠? 그래도 일찍 들어오려고 노력하는 아빠가 좋아요. 계속해서 더 많이 노력하세요. 사랑해요
이삐 드림~
ㅋㅋㅋ 그런데 이런 편지를 받고도 남편 뭐가 그리 좋은 지 싱글벙글 거리며, 우리 이삐가 아빠에게 감사편지 썼다며 자랑하네요. ㅎ
그런데 남편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그 때도 어버이날이 다 되어 학교에서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썼답니다. 우표를 붙이고 집 주소를 적어서 보냈는데, 보내고 난 뒤 잊어먹고 있었더랍니다. 그런데 어버이날 아침 아버지가 아주 화가난 투로 시장 일 나가시면 툴툴거리시더라네요.반면에 어머니는 아주 밝은 얼굴로 아버님을 따라 나서구요. 왜 저러시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밤이 되어서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날 아버님은 시장일을 마친 뒤 술이 한 잔 거나하게 되셔서 집에 돌아오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님을 부축해서 집으로 들어오시는데, 집에 오자마다 아버님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아들을 찾더랍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버지께 갔더니 다짜고짜 막 화를 내면서
"너 그러는게 아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니가 그럴 수가 있냐?"
혀꼬인 소리로 아들을 막 원망하더라는 것이죠. 방으로 모셨더니 아버님께서 편지 한 장을 꺼내 보여주시더랍니다. 보니 남편이 학교에서 아버지께 보낸 편지더군요. 어~ 저 편지 때문에 화내실 일 없을텐데.. 내가 얼마나 정성들여 썼는데..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라, 아버님께서 다시 혀꼬인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 얌마~ 니 엄마한테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맙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나한테는 술 담배 좀 먹지말라고 훈수두냐? 사람이 그래도 되는거냐? 이 아빠가 술 좀 먹기로서니 니가 돈을 보태줬냐?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
아하~ 남편 그 말을 듣자 감이 잡히더랍니다.
"에구~ 아빠에게도 다 좋은 말 적어놨잖아요. 요즘 술을 많이 드시는 것 같아 걱정이 되어서 아빠 건강하시라고 한 말인데 뭘 그러세요"
"그래도 그러는게 아니다 .."
하시면서 아버님, 그 날 밤늦게까지 아들 앞에 앉혀놓고, 섭섭하다느니 그러면 안된다느니, 내가 네게 부족하게 해준게 뭐냐느니 그렇게 술주정을 하시는 통에 죽을 맛이었답니다. 어머님은 뭐가 그리 좋으신지 두 부자의 대화를 들으며 실실 웃으시구요. 남편 그 때 두 가지를 결심했다고 하더군요. 첫째는 다시는 편지 안써준다는 것과 두 분 칭찬을 해도 공평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남편 하는 말
"나는 우리 아빠가 그리 속 좁은 줄 몰랐다"
ㅎㅎ 막내에게 오늘 받는 감사카드, 그 내용을 보고도 섭섭해하지 않고, 그저 고맙다며 자랑하는 남편의 마음을 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속이 좀 쓰리더라도 넓은 척, 아빠는 다 이해한다 그렇게 해야 담에 이런 편지라도 받을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이겠죠. 그나저나 막내의 이런 편지도 받았는데, 담 주부터는 진짜로 노력 좀 해볼려나? 기대를 말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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