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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시할머니가 보고싶은 손주며느리의 사연

알콩달콩우리가족

by 우리밀맘마 2010. 5. 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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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할머니
 
작년 초 겨울의 일입니다. 제 차는 경유차라 시동을 걸어도 열이 빨리 오르지 않습니다. 약 10분쯤 달려야 겨우 더운 바람이 나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태울려고 10분 일찍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아두어야 아이들이 따뜻하게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죠. 그런데 요 녀석들 기말 시험도 다치고, 또 삼학년이라서 그런지 학교를 이전보다 늦게 갑니다. 오늘도 이런 저의 수고로 우리 아이들 따뜻하게 등교를 하였습니다.

학교 교문을 살짝 지난 지점에 차를 세우면 아이들은 차문을 열고 하나 둘 제게 인사하며 내리는데, 저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리어카에 짐을 잔뜩 실고 천천히 제게로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구야, 제가 차를 빨리 옆으로 비켜야 할머니 계속해서 길을 가실 터인데.. 흘끗 뒤를 돌아보니 맨 구석에 앉은 아이가 차에서 내리네요. 문이 닫히는 소리에 좌우를 살핀 후 이제 차를 빼려고 하니 제 옆 차도의 차들이 일렬로 줄지어 끊임없이 지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저만치서 오시던 할머니, 벌써 제 차 코 앞까지 오셔서는 빨리 비키라며 연신 손을 내저으십니다. 저는 급한 마음에 빨리 비켜드려야겠는데, 아무리 깜빡이를 넣어도 옆 차들을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네요. 그런 저의 마음 아는 지 모르는 지 그저 할머니는 험악한 인상을 지으시며 빨리 비키라고 손을 내저으십니다. 


'할머니, 무겁고 힘드신 줄은 알지만 어떻게 합니까? 저도 빨리 가드리고 싶지만 차가 오네요. 좀만 기다려주세요.'


이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빨리 비켜드리려고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옆 차선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오늘 따라 왜 이리 양보를 하지 않으시는 건지. 정말 제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우리 할머니 갑자기 옆 차선으로 리어카를 모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주 큰 소리를 지르시며 손을 휘휘저으십니다.

"비켜라, 비켜라....."


할머니의 갑작스런 행동에 옆 차선에 지나가던 차들이 움찔하더니 그 자리에 멈춰섭니다. 우리 할머니 그렇게 제 차와 옆 차선의 차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리어카를 몰더니, 제 차 뒤로 유유히 지나가시는 겁니다. 순간 제 이마에 식은 땀이 다 흐르더군요. 그러다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사람들은 아줌마 파워가 세계 최강이라고 그럽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경험해보니 이미 그런 아줌마 파워를 달관의 경지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할머니 신공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요,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작년에 별세하신 저의 시할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 우리 할머니 92세로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마 우리 집에서 제일 건강하셨을 겁니다.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쉴 새 없이 일하셨구요, 돌아가시는 그 날도 뒷 산 텃밭에 심군 고추를 따시다 힘이 드셨는지 잠시 나무에 기대어 계신 채로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 신공은 저희 시할머니도 그 어떤 할머니 못잖은 파워를 갖고 계셨기에 가끔 할머니들의 무대포 신공을 접하게 되면 저희 시할머니가 떠올라 괜시리 웃음이 나옵니다.


하루는 슈퍼에서 베지밀을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베지밀도 두 종류더군요. 흔히 보던 콩으로 만든 베지밀이 있고, 또 하나는 검은콩으로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기한 마음에 검은색을 샀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베지밀을 사려고 계산중이던 할머니, 저의 베지밀이 더 맛있어 보였는지, 자신도 그것을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얼른 바꿔 드렸지요.
한번씩 할머니들의 엉뚱한 행동을 보면 그저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저희 시할머니의 사랑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저의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저는 할머니의 사랑을 모른 채 살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통해 만난 울 시할머니를 통해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특히 제 남편이 맏손주라고 얼마나 이뻐하시는지, 저도 그 덕에 할머니의 사랑과 비호를 받으며 시집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 정말 억지를 부르실 땐 대단하셨습니다. 심통 또한 말도 못할 정도구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도 한번씩은 힘든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울 시할머니는 제에게 든든한 후원자셨음에 틀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할머니 신공을 더이상 볼 수 없어 마음 한 켠 그리움이 솟아납니다.


내일 어버이날, 돌아가신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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