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막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 또 이사를 했습니다.
바로 이웃동네 아파트인데, 아파트에서 살아보기는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파트는 일반 주택과 형편이 많이 다르더군요.
정말 처음에는 아파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우리집 애들이 넷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습니다.
사건은 이사온 지 이틀째에 터졌습니다. 아침부터 아파트 관리실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우리집이 너무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왔다네요. 정말 놀랐습니다.
사실 아파트 들어올 때 이런 문제가 생길까봐 무척 조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전화가 오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질 모르겠더군요.
일단 무조건 죄송하다고 답해드리고 아이들에게 다시 교육을 시켰습니다.
"애들아 절대 뛰지마라, 살살 걸어야 한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어김없이 우리집 인터폰이 울립니다.
처음엔 관리실에서 왔지만 그 후로는 아예 아래층에서 직접 연락을 주시네요.
정말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빠른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인터폰이 울립니다. 거의 매일 울리더군요.
하루에도 수십번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야 했습니다.
"뛰지마라. 다리에 힘주지 말고 살살 걸어라."
정말 인터폰 소리에 경기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국경일이라 쉬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식구 모두 마음먹고 늦잠을 자기로 하고, 모두 편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폰이 울리는 것입니다.
"새벽부터 아이들이 왜 이리 시끄럽습니까? 아주 천둥이 치는 것 같습니다...... "
듣는 사람 아주 기분 나쁘게 하는 목소리와 태도, 마치 경찰이 범죄자를 다그치는 듯한 그런 말들, 사람 속을 확 뒤집어버질 정도로 조롱하는 듯한 말을 썩으며 화를 내네요.
받은만큼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은 꿀뚝같았지만 혹 우리 아이들이 저희를 모르게 잘못했나 싶어 죄송하다고 끊었습니다.
이런 날이 거의 몇달이 계속되었구요, 저나 아이들 모두 스트레스가 쌓일 때로 쌓였답니다.
"얘들아, 절대 집에서는 뛰거나 놀면 안돼고, 뛰거나 놀고 싶을 땐 밖에 나가서 한바탕 뛰고 와라. 알았지?"
그리고 하루에 1-2번은 아이들이 밖에서 놀도록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또 인터폰이 울렸습니다.
평일이고, 오전11시가 넘었을 때입니다.
"아줌마, 사람이 말을 하면 알아들어야지. 이 아침에 왜 이리 시끄럽습니까?"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되물었습니다.
"네~? 그런데 지금이 아침인가요?"
그러자 인터폰을 한 아래집에서 더 화난 목소리로 기분 나쁜 얘기들을 퍼부어 대더군요.
남의 말은 들을 생각 없이 계속 화를 내는 것입니다.
화가 난 저는 이렇게 했지요. 인터폰에 아주 크게요.
"야~~."
그리고 끊었습니다. 아우~제가슴이 콩쾅콩쾅 뜁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래집 아들이 올라오겠구나, 그래 한번 싸워보자.
그리고 순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드디어 아래집 아들이 숨을 헐떡이며 찾아 왔더군요.
그리고 아까처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좀 전까지만 해도 쿵쾅거리던 가슴이 진정되면서 아주 차분해지더군요.
흥분한 그 청년에게 제가 조금 언성을 높여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세요. 저도 말좀 합시다. 제가 왜 야~라고 소리를 쳤는지 아세요?
아까도 제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화만 내지 않았습니까?
이보세요. 저도 말좀 하자구요."
그제서야 그 청년 제 말을 들으려 하네요. 그래서 될 수 있는대로 차분히 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은 우리도 피해자다. 당신들도 우리 때문에 많이 힘들지만 매일 이렇게 인터폰 오기 때문에 우리도 너무 힘들다,
그리고 어떤 날은 우리 아이들이 다 자고 있을 때에도 인터폰을 해서 그 날은 아마 아파트 구조상 다른 집 아이들의 소음이 아닌가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그 때도 그냥 사과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아이들 모두 유치원과 학교에 가서 아무도 없어요.
서로의 형편에 대해 살펴보지 않고 이렇게 다짜고짜 역정만 내는 것은 서로간에도 좋지 않잖으냐?
아파트라는 것이 층간에 확실한 방음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를 배려하여 조심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인터폰을 하실 때는 기분이 나빠서 하시겠지만, 받는 저희도 인터폰이 울릴 때면 힘들어요.
우리 서로 기분 나쁜 것은 마찬가지니, 말이라도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얘기 하면 좋잖아요."
그러자 아래집 아들 태도가 달라지네요. 흥분이 좀 가라앉았는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죄송합니다. 사실 그리 큰 소리는 아닌데..
저희가 저녁에 무엇을 하다가 새벽5시가 넘어 잠이 들어서 신경이 예민했던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청년이라 참 다행이었습니다. 서로 화가 가라 앉으니 대화가 되더군요.
자신들이 계속 인터폰을 하는데도, 저희쪽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 더 화가 났던 모양이었습니다.
우리쪽도 힘들다는 것을 깨닫자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인터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엘리베이트에서 아래집 가족들을 만났더니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울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웃으며 귀여워하더군요.
그로부터 지금까지 아주 간간히( 6년 동안 3번정도) 인터폰이 울리긴 했지만
그전처럼 기분나쁜 말과 태도가 아니었기에 기쁜마음으로 아래층의 말들을 받아줄 수 있었답니다.
어떤 책에 보니 사람은 서로를 모르는만큼 미워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새삼 마음에 와닿더군요.
이 일로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성질 낼 일이라도 차분히 말하는게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과
배려는 서로의 사정을 이해할 때 생기는 것이라는 겁니다.
알기 위해서는 서로의 사정을 속시원히 말해주는게 좋다는 것두요.
그 날 그 청년이 뛰어올라오지 않았으면 (솔직히 뛰어 올라올 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지만) 지금도 서로 미워하며 살텐데요.
그 때 걱정이 되어 남편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했거든요.
문제 다 끝난 다음에 헐레벌떡 뛰어오더군요.
ㅎㅎ 미안하기도 하구, 고맙기도 하구요. ^^
*이 글은 2023.9.30.에 수정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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