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주년 울 남편과 떠난 밀월여행
우리 부부 결혼한 지 이제 24년이 됩니다.
예전 울 남편에 저를 광안리 바닷가 그 노을이 지는 해변으로 데려가 프로포즈 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결혼하고 애 낳고 또 낳고 또 낳고 또 낳고, 그리고 애들 키우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네요. 그래도 그저 무심하게 시간이 지나간 것은 아니랍니다.
결혼 후 우리 부부 그래도 아이들 남겨두고 외박도 하고, 함께 일출도 보고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결혼 한 지 한 15년 쯤 되었을 때였을 겁니다.
한 날은 울 남편 점심 때 제게 전화해서는
"사모님 오늘 어떻습니까?"
그러면서 절 꼬시더군요. ㅎㅎ
겨울 방학이라 우리 아이들 집에서 저랑 같이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궁리하고 있던 차에
아빠가 난데 없이 전화해서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걸 우연히 곁에서 들은 울 딸들..
우리들의 애정행각을 눈치 챈 울 딸들이 아빠 편을 들면서 절 집에서 밀어냈습니다.
요것들이 아마 우리 부부가 없는 틈에 집에 친구들 데려와 놀려고 그러는 게 보입니다.
솔직히 그리 따라갈 맘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울 딸들이 적극 밀어줍니다.
"엄마, 그래요 즐겁게 다녀와요.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엄마, 같다와요. 알았죠."
"엄마, 아예 가는 김에 외박도 하고와요. 우리가 집을 잘 볼테니까.괜찮아 우리 걱정하지 말고.. "
이 녀석들이 종달새처럼 차례로 제 곁에 와서는 오늘 아빠랑 즐거운 시간 가지랍니다.
거기다 외박까지 ㅎㅎ
"예가 외박은 무슨 ~."
울 남편 저와 아이들의 수다를 다 들었는지
저보고 갈 맘이 있으면 5시까지 사무실로 전화를 하라고 하네요. 흠 5 시라 ~
근대 오늘따라 뭔 시간이 이리 빨리 가는지, 5시가 다되갑니다.
울 큰 딸 학원 갈 준비를 마치고 잔소리 공격을 개시하네요.
"엄마, 오랫만에 데이트인데 좀 이쁘게 꾸미고 가요. 알았죠? 이쁘게 입고, 화장도 좀 하고..."
"얘는~."
울 큰 딸 말처럼 화장도 할까? 생각했지만 귀찮아서 그저 대충준비를 마치고 남편에게 갔습니다.
"어디 가고 싶어?"
"응, 아무때나."
"뭐 먹고 싶어? "
"먹고 싶은게 없는데요. 그저 밥먹으러 가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 분위기 있는 집으로 썰로 갈까(양식레스토랑 갈까?)? 아님 맛있는 보쌈 먹을까?"
저는 오랜만에 썰고 싶은 마음도 있어 그도 좋겠다고 했는데, 또 보쌈이란 말에 식욕이 동하네요.
제가 둘 다 좋다며 선택을 망설이자 해운대를 향해 운전을 하던 남편, 근처에 좋은 곳이 있다며 베비장 보쌈집이라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식당 실내 인테리어가 깔끔하니 참 괜찮습니다. 식전에 음료같은 와인도 한 잔 주네요. 오랜만의 데이트, 보쌈집이지만 레스토랑 분위기도 나는게 좋은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남편과 이렇게 나오니 머리도 덜 아프고, 기분이 좋구요. 음식도 맛나구요. 그런데 식사를 하면서 남편이 자꾸 절 보며 웃습니다.
"왜 웃어요?"
"오늘따라 울 아내가 너무 이뻐보여서..."
"왜? 조명이 잘 바쳐주나보네."
"아니, 정말 이쁘다 울 마누라~ 정말 이뻐."
남편의 이쁘다는 말,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뭐랄까? 부끄러움? ㅎㅎ 이렇게 오래 같이 산 남편인데도 절 이쁘다고 자꾸 쳐다 보니 좀 쑥스럽네요.
그렇게 맛난 식사를 마치고 송정 해변으로 갔습니다.
울 남편은 바다가 참 좋답니다. 바다처럼 넓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 싶다나요?
송정 해수욕장 노변에는 길카페가 이어져 있습니다. 커피를 제일 맛나게 타줄 것 같은 가게에서 카페라떼를 하나 시켜 들고는 팔짱을 끼고 해변을 걸었습니다. 밤이라 그런지 날씨가 꽤 추운데, 남편 외투를 벗어 제게 입혀줍니다. 완전 연애 기분 나구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설레는데, 울 남편의 표정은 무덤덤해 보입니다. 제가 또 시비를 걸었죠.
"난 기분 좋은데, 당신 표정은 왜그래요? 제가 팔짱껴도 아무 느낌도 없나보죠? 젊은 여자 애들과 찍은 사진을 보니 입이 찢어지더만..."
"ㅎㅎㅎㅎ"
남편이 어이가 없어 막 웃습니다. 제가 샘을 내고 질투하는게 싫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절 보던 남편 갑자기 노래를 부르네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거 이 사람에게서 언젠가 들었던 노래인데.. ㅎㅎ 예전에 제게 청혼할 때 그 땐 광안리 바닷가였는데, 이 노래를 불러주었죠. 와~ 그날이 어저께 같은데 벌써 20년이 다 되었네요. 그 날의 생각이 아련히 떠올라 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즈음 노래는 막바지에 이릅니다. 그러자 남편 갑자기 아주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해 ~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들리지 않는지 우릴 쳐다보지는 않네요.
그런데 울 남편 이 후렴구를 계속 반복합니다. 어이도 없고, 좋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모습을 봤는지 남편 다른 노래를 연이어 불러댑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든 너를 볼 수 있다면...물안개 피는 언덕에 서서 ..우우우....."
잘나가다가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는지 계속 우~만 합니다.
"에이~ 작사를 해서 부르면 되잖아요."
"내~맘에는 오직 당신~만 있네..ㅎㅎㅎㅎ.."
"왜 그만 불러요. 계속하지 않구?"
"곡조도 생각이 안나."
다른 곡을 불러주겠다며, 송창식의 "우리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릅니다.
뭐 가사를 끝까지 아는 건 없지만요, 가사 생각 안나면 알아서 작사해서 부르고, 그렇게 불러도 전 모르죠. 저도 가사를 다 모르니.ㅎㅎ 그런데 노래 부르다 사랑이란 가사만 나오면 소리를 내어 크게 부릅니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기분은 짱입니다.
남편은 이왕 왔으니 내일 아침 일출을 보고 가자고 통 사정입니다.
뭐 요즘 너무 사진을 안찍어 카메라에 곰팡이가 폈다나요? 이제껏 절 기쁘게 해준 남편의 정성이 가상하여 져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남편과 함께 보는 일출 정말 환상적이더군요.
남편은 수평선에 구름이 끼어 오늘도 꽝이라며 입이 한 발은 나왔는데,
저는 구름 속에서 살짝기 쏫아나는 햇님과 아침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저는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어 있는데, 울 남편 그래도 어떻게 하든 한 장이라도 건지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이제 가자니까 5분만 더 참아달랍니다.
아침 노올에 물든 바다, 그 위를 고깃배가 지나가는 모습 담아야 한다나요?
그 위로 갈매기 서너 마리 날아주면 금상첨화라는데, 갈매기 모델료를 안줘서 그런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갈매기 날아올 때까지 시린 손 호호 불며 노을을 감상했죠.
오늘 정말 많이 참아 주었습니다.
그래도 남편 이렇게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흐뭇합니다.
앞으론 남편 말 좀 더 들어주고 져줘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남편이 제게 그렇게 해주었거든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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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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