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남편과 팔딱이는 아내 24년을 함께 살아가는 비결
혈액형과 성격은 별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제 경우를 보면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 B형이고 울 남편은 O형입니다. 울 남편은 매사가 좀 느긋한 편이고, 전 좀 다혈질적입니다.
결혼 전엔 그리 급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밥도 천천히 먹고, 행동도 그리 빨리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결혼하면서 조금씩 달라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처녀 때의 그 조신함은 어디 간데 없고, 괄괄한 다혈질의 아줌마가 되어버렸습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이건 선천적이 아니라 결혼 24년이 가져다 준 환경의 변화가 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무래도 맏며느리라는 부담감도 있구요, 또 아이들 넷을 키우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성격이 그렇게 변해 간 것이 아닐까 싶네요.
이런 저의 성향이 아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애요. 우리 애들도 은근히 급하거든요.
아마도 제가 빨리하도록 다그친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제 성격을 좀 다시 고쳐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기다림은 정말 힘든 일 중의 하나입니다.
달력을 볼 때 25일이 지나가면은 벌써 달력을 때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지난 달이 아직 5일이나 남았을 때에도 달력을 떼고 싶은 충동을 이기기 어려웠는데,
억지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만 기다려, 다음 달 1일이 되면 때자 !!!"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ㅎㅎ 손이 근질거리지만 그래도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1일에 달력을 찢는 그 짜릿한 쾌감.. 별걸로 다 희열을 느낀다고 하실 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정말 큰 인내의 순간이었고, 인내는 달다고 한 그 결실을 맛본 것입니다.
이런 저에 비하여 남편은 정말 느긋한 사람입니다.
어떨 땐 그 성격이 부럽고, 어떨 땐 정말 화가 날 정도로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마 우리 부부의 부부싸움 절반은 이 성격과 직간접적으로라도 연관된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제가 좀 기다렸다 말하면 좋게 대화로 해결될 것을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 급하게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남편은 좀만 기다리지 이사람아 하는 표정으로 절 봅니다. 그리고 그런 남편의 모습이 얄밉기도 하고, 또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결국 싸움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느긋한 아빠가 좋은데,
아빠 편들기 하면 제가 섭섭해할까봐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아빠는 아빠로서는 점수를 많이 줄 수 있는데, 내가 볼 때 남편으로서는 아닌것 같아."
" 왜?"
" 돈도 잘 못 벌지, 매일 늦게 들어오지....."
"그래도, 엄마를 사랑해 주고, 성격이 좋잖아."
"그건 그래 ~ 인정"
그렇게 말하곤 웃었습니다.
사실. 전 남편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늦게 들어오기 때문이죠. 저를 항상 기다리게 하니까요.
전 어려서부터 일찍 자는 습관이 있어, 밤 10를 넘기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하지만 남편은 10시를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11시, 어떨 때는 12시가 다 되어야 귀가합니다.
전 남편을 보고 자고 싶은데, 남편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려니 너무 힘이 들어서 많이 속상합니다.
남편은 그냥 일찍 자라고 하는데, 그럴 수 있나요.
남편은 저의 이런 사정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더 속상하기도 하구요.
한번은 주일 예배 시간에 우리 교회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설교 제목이 "깊은 곳에서의 기다림", 뭔가 상당히 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이지 않습니까?
설교 제목처럼 내용은 기다림에 대해 성경적으로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포기않고 기다리시니
우리도 그런 기다림과 인내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기다림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옛날 "테스"라는 소설을 읽을 적이 있습니다.
그 소설에 테스의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테스의 엄마는 황혼이 지는 저녁 아기 젖을 물리며,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녀에게 이렇게 아기에게 젖을 빨리며 아빠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때 이 구절을 읽으며 전 아주 분노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금씩 그 구절에 공감이 느껴지네요.
울 남편의 못된 취미 생활이 하나 있습니다.
제 성격을 넘 잘 아니 한번씩 살짝 살짝 건드려봅니다. 그러면 전 여지없이 팔딱이게 되구요.
그러면 울 남편이 이러죠.
"어떻게 24년을 그리 한결같이 반응하냐? 정말 신비다."
제가 그런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성격 급하고 팔딱이며, 소리부터 지르는 여자랑 사는 거 힘들지 않아?"
그러자 울 남편 이렇게 말하네요.
"첨에는 당신 성격 한 번 바꾸어 보려고 했는데 살짝 시도해보니 그건 미친 짓이더라구.
그래서 당신 성격을 그대로 인정해버렸지. 울 마눌은 이렇게 팔딱이는 매력적인 여자다.
그러다보니 당신의 성격에 익숙해지고, 그러려니 해지고, 요즘은 갈수록 더 귀여워지고..
아무래도 내가 좀 미쳤나봐. 왜 갈수록 울 마눌이 이뻐지지?"
아무래도 울 남편 정말 미쳤나봅니다.
전 아직도 울 남편이 절 위해 변해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울 남편 쉬 변화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생활환경이 바껴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겠죠.
늦게 오고 싶어 그러겠습니까? 우리 가족 먹여살리기 위해 그리 하지 않으면 안되니 그런 것이겠죠.
그래서 저의 기다림의 사랑은 오래도록 계속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리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
간혹은 정말 얄미울 때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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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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