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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합헌과 사형수의 자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영혼의 양식

by 우리밀맘마 2015. 2. 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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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사형수의 자살로 본 사형제도에 관한 성경의 이해


 

 

사형제도는 과연 인권을 무시한 시대에 뒤쳐진 구시대의 유물로 봐야하는가? 사형제도는 사람의 생명을 도외시하며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끊는다는 점에서 신에 대한 도전인가? 성경은 사형제도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그리고 자살한 사형수, 그의 죽음을 어떻게 봐야할까?
 

이전에 모 구치소에서 수감중이던 한 사형수가 자살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살한 사형수의 내력을 살펴보니 사실 동정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형수의 그런 자살로 인해 그를 수감한 교도관과 구치소 소장 등 엄한 사람들이 줄줄이 곤욕치르겠다 싶은 마음이 더 앞서더군요. 저와 친한 분이 구치소를 다니면서 제소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고, 또 우리 교회도 사형수를 교화시키는 일에 열심이다 보니, 간혹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라 그런 생각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소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는 친인으로 부터 이번에 자살한 사형수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살짝 마음에 혼란이 왔습니다. 그 사형수도 모 교회에서 교화를 맡았고, 돌보는 목사님이 물심양면으로 정말 열심히 보살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형수도 점점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회개하였고, 또 세례를 받으며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변화되어가던 그가 갑자기 이런 극단적인 일을 벌인 것에 대해 그 목사님의 충격이 실로 컸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측하건데 요즘 조두순 사건 등을 통해 사형제도 부활론이 현실로 나타나자 이에 더이상 희망을 잃고 자살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더군요.

얼마 전 대법원에서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합헌이지만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던가요? 앞의 사건과 맞물려 이것을 신앙인으로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궁금증이 들더군요. 그래서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아마 저같은 교인 땜에 우리 목사님 참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물을 곳은 우리 목사님이죠. 그래서 심방갔다 돌아오시는 목사님을 교회 마당에서 잡고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목사님, 사형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작스런 나의 공격에 당황하신 목사님이 황당하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시더니, 커피 한잔 빼오면 가르쳐주겠다시네요. 그래서 교회 자판기에 제일 비싼 커피를 대접해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제가 답을 해주시네요. 

1. 성경은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분명히 사형제도가 명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천륜과 인륜을 저버린 극악무도한 죄, 특히 하나님을 경멸하거나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살인 등의 흉악한 죄, 남의 아내를 범한 죄, 강간 등은 그 죄를 고소한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며, 함께 한 증인과 모여든 사람들이 공개 처형시켰다고 하네요. 이렇게 단호한 처벌을 통해 그 당시 아주 무질서했던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켰던 것이죠. 이렇게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형제도가 성경에 어긋나는 제도가 아니라고 하시네요. 
  
2. 그러나 사형을 실행할 때는 그에 따른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일방적인 증언으로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혹 살인을 했더라도 그가 고의로 하지 않은 경우는 도피성이라는 구제책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현 시대의 사형제도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법을 빌미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독재시대 때에 정적을 없애는 수단으로 사용된 적이 많거나,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후 그를 사형당하게 하여 죄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완벽한 증거를 갖고 구형을 했지만 나중에 예기치 않은 다른 정황이 나와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때는 정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도 사형을 당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형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의 집권층에 의해 모함을 당했고, 로마 총독의 정치적인 이유로 십자가라고 하는 가장 극악한 형벌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봐서도 사형은 잘못 집행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하는데, 이런 억울한 죽음이 사람의 제도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죠.

4. 우리가 사형제도 등 형벌을 두는 목적은 어디에 있나요?

이런 형벌은 두 가지의 목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 죄를 처형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죄를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과 또 하나는 그런 처벌을 통해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고 살도록 교화시키는 것이죠. 사형은 그런 회개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엄한 형벌입니다. 그렇게 엄한 형벌을 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도저히 재심의 여지가 없는 사람인지 잘 살펴야하겠죠. 그래서 성경은 그 사람의 죄는 미워하되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에스겔서에 있는 말씀을 목사님이 들려주시네요. 바로 하나님의 뜻은 죄인이 그 죄로 죽고 멸망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살아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지은 채 그렇게 죽어버리기를 바라지 않고,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자신이 이 인간 세계에 오신 이유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형수라 할지라도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6. 우리 나라에는 억울한 죽음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면 참 억울한 죽음이 많았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사형당할 사람이 아닌데 사형을 당한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사형제도는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 많다고 보여집니다. 사형제도를 통해서 갖는 이익보다는 도리어 억울한 죽음을 더욱 많이 양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십자가_골고다언덕 예수님이 사형당하신 골도다 언덕과 세개의 십자가



여기까지 말씀하셨을 때 제가 목사님께 정말 묻고 싶은 것을 또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사실 사형제도가 없어져서 사형받을 사람들이 무기수가 되어 감형을 받고 다시 사회로 나와서 또 같은 죄를 저지를 수 있잖아요. 늙어 사회에 나오니 사회에 적응할 수 없고, 그래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데 대상이 더 힘없고 약한 아이들에게 행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를 봐도 사형제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또 사형수들도 평생 감옥에서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목사님이 좀 고민스러워 하시네요. 제가 좀 미워지실텐데 걱정이네요. ㅎ 목사님께서 답변을 주십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죠.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헛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출감 대상자들이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적응 교육을 시키거나 사회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겠죠. 그러나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 사람이라도 회개해서 새 사람이 되는 가능성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이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형수들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하지 않겠습니까? ... 

예전에 어떤 목사님으로 부터 저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 죄인에게 가장 큰 형벌은 착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

상당히 역설적인 말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저도 간혹 저에게 못된 짓을 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 주님 저 사람들도 저처럼 착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에게 해꼬지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여기까지가 목사님과의 대화입니다. 
솔직히 목사님 말씀이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왠지 시원하지는 않지만,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오늘 우리 교회가 돌보고 있는 사형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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